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음악 인생/데뷔 과정과 1집 Christina Aguilera (문단 편집) == 유년 시절과 MMC, 데뷔 과정 == [[1980년]] [[12월 18일]]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에서 태어난 '''크리스티나 마리아 아길레라'''는 [[남미]] [[에콰도르]]의 출신의 아버지 파스토 아길레라, [[독일]], [[아일랜드]]계 혼혈이었던 어머니 셸리 컨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크리스티나는 남미 에콰도르와 독일,아일랜드 혼혈이다. 크리스티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했었는데, 집에서 TV를 볼 때도 콘서트를 보다가 채널을 돌리려고 하면 크게 울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그녀가 태어난 뒤, 파스토는 셸리에게 군대에 입대한다고 상의 한마디 없이 계약 서명까지 끝냈고 결국 아길레라 가족은 하루아침에 군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셸리는 이때 대학을 포기하고 오직 파스토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기 시작한다. 아길레라 가족은 [[텍사스]]주 산안토니오에 있는 기지에서 지내다가 얼마 뒤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 생활했다. 그러나 파스토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아길레라 가족은 그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멍들어가고 있었다. 셸리에게 틈만 나면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던 파스토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크리스티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매일 밤 부부 싸움이 일어나면 크리스티나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노래를 부르며 아픔을 이겨냈다. 몇 년 뒤 둘째 딸 레이첼을 출산한 셸리는 파스토의 명령으로 미국 [[뉴저지]]로 돌아왔고 이 시기 파스토는 크리스티나한테까지도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측근에 따르면 아길레라 가족이 가장 힘들었을 시기라고 밝혔을 정도로 암흑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루는 크리스티나가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계단에서 밀어버려 얼굴이 피범벅 된 적도 있었다고 하니 그의 폭력 수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매일 밤 셸리에게 "오늘 밤이라도 할머니 집으로 가면 안돼요? 엄마 제발 부탁이에요"라고 간절히 애원했고 결국 셸리는 두 딸을 위해 파스토와 이혼하고 [[펜실베이니아]] 로체스터에 있는 친정 엄마 집으로 가게 된다. || [[파일:youngxtina.jpg|width=100%]] || || '''어린 시절 크리스티나의 모습.''' || 이들이 찾은 새로운 보금자리는 5000명 남짓 사는 아주 작은 동네였다. 크리스티나는 항상 집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의 사운드트랙 테입을 집에 크게 틀어놓았고 극중에서 쥴리 앤드류스가 들판을 돌면서 노래하는 부분을 따라하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닐만큼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크리스티나는 매일같이 인형을 관중으로 샴푸 병을 마이크로 삼아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나 셸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바빠 크리스티나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모르고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셸리의 엄마가 크리스티나의 재능을 눈치채게 해줬고 때마침 유치원에서 열린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셸리에게 부탁한다. 망설임 없이 셸리는 공연을 허락했으며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크리스티나는 그동안 갈고 닦은 노래실력을 사람들 앞에서 뽐내게 된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파워풀한 가창력을 지켜본 관중들은 '''당연히 [[립싱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안가 립싱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노래가 끝나자마자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5분 동안 기립박수가 계속 됐다고 하니 당시 공연이 상당히 대단했던 게 아닐까. 장기자랑이 끝난 후 무대의 기쁨을 알게된 크리스티나는 새로운 무대를 찾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셸리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못이겨 [[비욘세]]등도 거쳐간 유명 TV쇼 '스타 서치(Star Search)'에 장기자랑 영상을 비디오로 녹화해 보낸다. 셸리는 당연히 무시당할거라고 생각했지만 보낸지 일주일도 안돼서 연락이 왔고 셸리는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스타 서치에 참가한다. 크리스티나의 첫 TV 데뷔 무대가 된 셈. 당시 그녀나이 '''8살'''이었다. || [youtube(ceOFxxHzE7A)] || || 1990년 3월 15일 Star Search 그녀의 영원한 우상 [[에타 제임스]]의 곡 "Sunday Kind of Love" || 크리스티나가 참가하기 전까지 스타 서치의 챔피언이었던 크리스토퍼 이슨은 당시를 회상하기를 크리스티나와 맞붙게 된 날 가족들이 먼저 리허설을 보고 "이제 우리는 짐을 싸야될거 같다"고 말했으며 정말 초조했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의 크리스티나는 8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기교와 노래 실력으로 관중을 휘어잡았고 지금봐도 꽤나 놀라운 무대였다. 이들의 승패가 갈라지는 첫 판정단 결과에서는 같은 점수가 나와 동점이었으나 최종 점수까지 합산한 최종평가에서 결국 프로그램은 크리스토퍼의 손을 들어줬다. 크리스티나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도 해맑게 웃으며 퇴장했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뒤 정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때 셸리는 울고있는 크리스티나에게 진정하고 크리스토퍼를 축하해달라고 했고 '''"너의 노래 실력은 신이 주신 은총이니까 신이 도로 가져가실 수도 있다"'''며 그녀의 정서적인 성장을 도왔다. 스타 서치에 참가한 이후 그 작은 동네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크리스티나는 주변 반응에 힘입어 작은 TV쇼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반응은 역시나 대단했고 9살이 된 해에는 피츠버그에서 탤런트 쇼를 진행하던 쥬드 폴의 눈에 띄어 스타 서치와 비슷한 형식의 토너먼트 오디션 프로에 출연하게 된다.[* 처음 기획 담당자가 크리스티나의 무대 테이프를 보고 셸리에게 립싱크는 받지 않는다고 했으나 셸리는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와 직접 무대를 보여줬다는 후문이 있다.] 크리스티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도전자들을 넉 다운 시켰고 일부 도전자들은 크리스티나와 맞붙는거 자체를 두려워 해 자진 포기한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몇번은 상대 없이 이긴적도 있다고. 당시 크리스티나와 붙었던 한 참가자는 그때도 크리스티나는 굉장한 자신감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다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 당하고 싶지 않다며 안타까운 소감을 밝혔다(...) 크리스티나는 이 쇼에서 6번 출연해 6번 모두 이기는 그야말로 압승을 차지했다. 이후 피츠버그에서 전설로 불리는 아역 캐스팅의 대가 월트 매덕스의 눈에 들어와 피츠버그의 소극장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점점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자 주변 사람들은 점점 질투하기 시작한다. 또래 아이들은 자기들의 입지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는지 못되게 굴기 시작했고 심지어 학부모들까지 개입해서 그녀의 앞길을 막으려 했다. 크리스티나가 공연할때 앰프의 플러그를 빼버린다든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한 아이들도 있었다고한다. 그래서 결국 크리스티나는 장기자랑 대회에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됐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도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된다. 그때 셸리는 고작 어린 소녀였던 크리스티나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자초지종을 설명할수도 없는 처지였고, 정말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나 잘은 모르겠지만, 더 큰 일을 위한 준비 과정일지도 몰라"''' >------- >- 어머니 셸리 컨스가 어린 시절 크리스티나에게.[* VH1 Driven 중 그녀의 인터뷰를 발췌.] 크리스티나는 이런 주변의 시기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 9살이 되던 해 어느날 크리스티나의 할머니는 신문 기사를 셸리에게 보여줬다. 그 내용은 디즈니채널에서 새롭게 재편된 MMC에 출연할 아역 탤런트들을 뽑는다는 모집 공모였으며 MMC는 디즈니 간판 프로그램이자 10대 탤런트들이 출연하는 당대 최고의 인기 쇼였다. 당연히 크리스티나는 오디션을 보고싶다고 했고 약 400명이 자리한 지역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오디션 현장에서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50여개의 노래 테입들을 보여주며 여기서 무엇을 원하냐고 당당하게 말했고 멋드러지게 불러냈다. 당시 오디션에 함께 참가했던 제시카 심슨이 회상하기를, '''"내 인생을 통틀어 최대 치명적 실수는 내 바로 앞 번호였던 클쓰의 MMC 오디션을 CCTV로 봐 버린거에요. 그녀는 머라이어 캐리처럼 정말 잘 부르더군요"'''라고 했다.[* 이후 아쉽게도 제시카는 낙방했다.] 심사위원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감정, 테크닉, 음정 어느곳에서도 흠잡을 게 없다고 평가했지만 크리스티나는 당시 나이 10살로 MMC의 나이 기준에 맞지 않아서 결국 출연하지 못한다. 당시 감독은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크리스티나는 많이 실망했다고 한다. 한편 이 시기 셸리는 응급 의료 보조원 제임스 컨스(James Kearns)를 만나기 시작했고 제임스는 파스토와는 달리 믿음직스럽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이들은 크리스티나가 14살이 되던 해 재혼하게 되고, 이복형제 케이시 컨스(Casey Kearns)[* 1984년 3월 5일생]와 이복자매 스테파니 컨스(Stefani Kearns)[* 1986년 12월 13일생] 그리고 제임스와 셸리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마이클 컨스(Michael Kearns)[* 1996년 4월 30일생]와 같이 살게 된다. || [[파일:ca가족사진.png|width=100%]] || || '''크리스티나의 새로운 가족사진.'''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피고 있었다.''' || 이후 크리스티나는 동네에서 가장 큰 행사였던 대퍼댄 디너에 참여하게 되는데 대퍼댄 디너는 1000여명에 가까운 스포츠 관련 인사들이 참가하는 자리였고 여기서 크리스티나는 그들 앞에 서서 당당히 노래를 불렀다. 당시 프로 야구팀인 피츠버그 파이러트에서 미국 국가를 불러줄 사람을 찾고 있던 관계자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을 보고 국가를 불러줄 만한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해 단번에 그녀를 픽업했다. 크리스티나는 16000석의 대형 경기장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 반주도 없이 국가를 불러냈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그때 크리스티나는 겨우 11살의 어린 나이였다. 크리스티나가 점점 TV에 나오기 시작하자 그녀의 모습을 본 케이블 TV쇼 진행자 그레그 히멜스타인은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크리스티나를 섭외했고 이 방송에서 인터뷰도 하고 무대에서 '[[Black Velvet(알래나 마일즈)|Black Velvet]]'을 멋드러지게 불렀다. 방송 이후 방송국에 이 소녀가 누구냐는 편지가 100통이나 넘게 왔다고 하니 작은 케이블 방송에서도 그녀의 가창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가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같은 반 친구들은 다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그녀뿐만 아니라 여동생 레이첼, 그리고 어머니 셸리까지 괴롭히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나는 신문에서 자기의 이름이 나오면 또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올까봐 무서워했고 당시 괴롭힘을 주도하던 한 여학생은 완전히 미친거 같았다고 어머니 셸리는 얘기했다. 이들은 크리스티나 가족의 차 타이어를 펑크내기도 했으며 단순한 질투나 괴롭힘이 아니라 점점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위에 이르렀다. 셸리는 결국 이사를 결정했고 동네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웩스퍼드(Wexford)로 집을 옮겨야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 노래에 대해서는 셸리도 간섭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러던 중 탈락의 고비를 마셨던 [[미키 마우스 클럽]]의 관계자가 다시 연락을 해와서 새로운 시즌의 오디션을 보러 올 것을 제안했고 결국 당당히 합격하여 여기서 훗날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 되게 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 [[파일:크리스티나MMC.gif|width=100%]] || || '''미키 마우스 클럽 시절의 크리스티나.''' || || [youtube(JPIAmWPTVbs)] || || '''Mickey Mouse Club Season 6''' 크리스티나의 영원한 아이돌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 I Have Nothing || 크리스티나는 12살때부터 본격적인 MMC에 합류하게 됐는데, 당시 동기로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라이언 고슬링]]등이 있었다. 밀레니엄 시절 스타들의 등용문인 셈. 그리고 앞서 말한 그 한 소녀는 바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였다. 비슷한 나이 또래에 쇼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둘은 단짝 친구로 항상 붙어다녔고 각자의 집에 놀러가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우정을 쌓기도 했다. MMC에서 그녀는 항상 행복했으나 학교에서도 따돌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크리스티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같은 나이 또래지만 모두의 주목을 받는 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것이 불쾌했던 이들은 체육 수업을 하던 어느 날 미리 계획을 짜고 크리스티나만 집중적으로 공으로 맞추는 악행을 저지르는 행동을 했고 결국 학교도 여러 차례 전학을 거치면서 MMC 촬영 등으로 인해 수업에도 참여하지 못해 그녀는 학교 생활에 아예 미련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MMC로 활동하던 [[1994년]], 디즈니는 일방적으로 MMC 후속 시즌 취소를 통보하면서 출연자들이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브리트니와 크리스티나가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http://file.instiz.net/data/file/20131222/7/5/a/75aaa8a14a5a5c63613dbb4ad39bbcca.jpg|사진]]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정도였는데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된 출연자들은 모두 [[멘붕]]이었다. 결국 출연자들의 반발에도 MMC는 매정하게 종영됐고 이후 크리스티나는 학교를 포기하고 홈 스쿨링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데뷔 준비에 돌입한다. 얼마 뒤 뉴욕에 있던 매니저 스티브 커츠(Steve Kurtz)가 그녀에게 접촉을 해왔고 서로의 입장이 잘 맞았는지 그가 크리스티나의 첫 매니저가 된다. 스티브가 처음으로 내민 스케쥴은 [[일본]]의 음악 감독이자 가수였던 케이조 나가니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었는데 유년 시절 일본에서 자라기도 한 크리스티나는 다시 일본으로 날아가 그와 함께 'All I Wanna Do'를 녹음했다. 일회성이지만 몇번 무대에 같이 서기도 했다. [[1997년]]에는 미국을 대표해 루마니아로 날아가 유럽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 'Golden Stag Festival'에 참가했고 셰릴 크로우와 [[다이애나 로스]]의 노래를 선보여 신인치고는 꽤나 좋은 무대를 선보였다. || [[파일:capredebut.jpg|width=100%]] || || '''데뷔 전, 녹음중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이후 레이블사에 보낼 데모 테입를 만들기 시작한 크리스티나는 프로듀서 롭 호프만과 작곡가 헤더 할리와 연결이 됐고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통화하던 와중에 수화기 넘어로 들리던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고 크리스티나가 이 노래가 뭐냐며 그들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그 노래는 헤더가 금방 작곡을 마친 곡이자 그녀의 초창기 음악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는 1집 수록곡 ''''Obvious''''였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크리스티나는 이 노래를 한번도 라이브한적이 없다.] 크리스티나는 헤더에게 이건 자기 노래니까 다른 사람에게 절대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데모를 녹음하기 위해 혼자서 L.A에 날아왔다. 그리고 녹음실 부스에 들어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큰 성량때문에 녹음실이 떠나가라 노래를 불러댔고 거기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노래를 멋지게 부르고 나서도 다시 부르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스탭들의 생각으론 도저히 그것보다 잘 부를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녹음에 돌입한 크리스티나는 '''정말 이전보다 더 잘불러내어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게 데모 테입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MMC에 함께 출연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자이브 레코드와 계약한 소식을 듣게된다. 이 소식을 듣고 크리스티나는 너무 기뻐했고 축하해줬지만 측근들에 따르면 친구의 데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함께 출연한 동료들이 자신보다 먼저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해보이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다만 후에 제시카 심슨의 아버지가 밝힌 바로는, 이미 이 시기부터 아길레라와 브리트니는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던 대형 가수 지망생으로,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이미 이들이 팝 시장을 이끌어갈 차세대 디바가 될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16살이었던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앨범을 발매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완성된 데모 테입을 여러 레이블에 보내도 특별한 연락이 없어 실망스러워 하던중 데모 테입이 [[RCA 레코드]]의 사장 밥 제이미슨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테입을 듣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그걸 다룰만한 인재였던 RCA의 론 페어에게 전달했다. || [[파일:aguilera.jpg]] || ||<:> 1998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론 페어는 처음 몇 곡을 들었을때 크게 뛰어난 점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이후 'Obvious'를 들으면서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이 노래에 삘이 꽂힌 론은 재빨리 크리스티나에게 만나자고 요청했고 첫 만남 자리에서 론은 인사하기도 전에 대뜸 노래를 불러보라고 요청했다. 이에 처음에 조금 당황했지만 크리스티나는 당당하게 아카펠라로 [[휘트니 휴스턴]]의 '[[I Believe in You and Me]]'를 열창했고 론 페어의 편에 따르면 크리스티나는 가히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감과 두려움을 모르는 태도로 일관했으며 결국 이 모습에 코가 꿰인 론은 이 아이를 빨리 RCA와 계약시켜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정식으로 발탁하기에 이른다.[* 당시 RCA는 소속 가수였던 [[엔싱크]]가 자이브 레코드로 레이블을 옮긴 상황이라 이들을 대체할 가수를 찾고 있었는데 이때 크리스티나가 등장하면서 RCA는 크리스티나에 포커스를 맞춰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었다.] RCA와 계약한 이후 론 페어는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음악 감독 크리스 몬텐에게 연락을 받는다. 크리스는 [[디즈니]]에서 새롭게 제작하는 영화 [[뮬란]]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고 있었고 주제가인 '''[[Reflection]]'''을 부를 사람을 찾고 있었지만 적임자가 나오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Reflection'을 작곡한 매튜 와일더는 노래에 높은 미(High E Above Middle C) 음을 진성으로 부를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에 적합한 인물이 없었던 것. 그 얘기를 듣자마자 론은 크리스티나를 떠올렸고 곧바로 전화해 그 음을 부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는 천진난만하게 "엄마 나 그 음 부를 수 있어요?"라고 되물었고 그 음이 들어간 노래를 찾다가 자신의 롤모델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Run to You'로 결정해 집에 있던 아주 낡은 레코더를 가지고 화장실에서 녹음해서 보냈다. 작업진들은 테입을 듣고 빛이 보이는 듯 했지만 음질이 너무 나빠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크리스티나를 직접 만나보기로 한다. 그들은 비행기를 준비해서 크리스티나를 찾아왔고 그 자리에서 크리스티나는 '[[Reflection]]'을 부르기 시작했다. 몇 소절 안가서 완벽하다고 합의를 본 제작진은 그 자리에서 'Reflection'의 주인공을 크리스티나로 낙점했고 RCA와 계약을 치룬 주에 영화 주제가까지 따낸 크리스티나는 이후에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한 주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 곡의 최대 미션인 '높은 미' 음정을 부르는데 문제가 생긴 크리스티나는 작곡가 매튜와 3~4일밤을 걸려서 그 음을 연습했지만 정말 부르기 어려워서 결국 보컬 코치까지 대동하며 연습에 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 음을 제대로 때리는 순간, 모두가 기뻐하고 안도했다. 현재 같으면 [[오토튠]]으로 음정을 살짝 보정하면 될 문제지만, 이때는 98년이었고 음정 보정 기술 같은 것은 거의 보급되기 전이었다. 정말로 노래를 잘 하는 사람만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믹스보이스 보컬 트레이닝이 활성화된 현재 기준으로도 높은 미(E5)는 상당한 고음이며 이당시에는 더욱 귀한 고음이었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녹음한 Reflection은 [[1998년]] [[6월]]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게된다. 다만 실제 판매된 버전에서는 한키 낮춘 내림나장조(Bb Major) 편곡이며 최고음 역시 한키 낮은 미b(Eb5)다. (최후반부 who I am in'''side'''에서 진성 Eb을 찍는다.) 그래도 대단히 높은음인 것은 맞다. Reflection 싱글은 RCA에서 크리스티나가 뭘 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싱글이었고 크리스티나는 각종 언론에 나와 프로모션을 가지며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Reflection은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주지는 못했고 아쉽게도 마이너한 히트에 그쳤다. 결국 RCA는 같은 해 9월 1집 앨범을 발매하려던 계획을 연기시킨 다음, 철저한 준비 하에 1집 앨범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Reflection은 영화 [[뮬란]]의 흥행에 더불어 1998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얻었고,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커버 되면서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 [youtube(7tyAmLC4_ro)] || || 크리스티나의 첫 싱글, 'Reflection' || 자신의 첫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피츠버그에서 L.A로 날아온 크리스티나는 어린 나이에 혼자서 빡빡한 일정을 감당해야 했다. 앨범 녹음을 위해 매번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만 묵으며 녹음했다고 한다. 그녀는 여러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프로듀서들을 만났고 그 와중에도 녹음은 계속됐다. 지친 와중에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열정과 감성을 보였다고 작업진들은 회상했으며 그렇게까지 힘들게 녹음했으니 크리스티나도 '''자신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다. 당시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가창력이 돋보이게끔 화려하게 부르고 싶어했고 작곡가들은 그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한 소절 한 소절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정말 전쟁같았다고. >'''그녀는 강한 여자예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하라는 대로 할 여자가 아니죠.''' >------ >- VH1 中 RCA 대표 밥 제이미슨의 한마디. 앨범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될 즈음, 앨범에 수록될 마지막 한 곡을 놓고 고심하던 RCA는 작곡가 데이빗 프랭크가 보내온 데모 트랙 '''Genie In A Bottle'''을 듣게 된다. 당시 데이빗은 여러 기획사에 이 노래를 보냈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그러나 론 페어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이건 크리스티나의 첫 싱글이다!"라며 확신했고 크리스티나에게 이 노래를 부를것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가창력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곡을 부르기 원했기 때문에 처음엔 조금 망설였다고 한다. 고민 끝에 본인과 어울리는지 판단하기 위해 한번 불러보기로 한 크리스티나는 스튜디오에 걸어 들어와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완전히 자기 노래로 표를 찍어버렸다.''' 사실 'Genie In A Bottle'은 이전 싱글 'Reflection'의 전통 팝 발라드와는 다르게 [[컨템퍼러리 R&B|R&B]] 창법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전까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가는 조금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Too Much할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본인도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이 노래를 부르기로 결정한다. RCA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프로젝트는 여러 사람의 밥줄이 달린 큰 프로젝트였다. 그만큼 많은 투자를 했고 '''크리스티나는 떠야만 했다.''' 첫 싱글 'Genie In A Bottle'의 발표를 결정하고 RCA는 Genie의 팝 적인 이미지를 커버하기 위해 한번은 피아노 한대만 놓고 그녀의 쇼케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크리스티나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첫 자리였는데 당시 자리에 있던 관계자들은 모두 굉장한것을 본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볼건 다 보고 들을 건 다 들어본 베테랑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감탄했을 정도. 그렇게 그녀는 99년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다. || [youtube(aSXEVV0AUFM)] || || 1999년 4월, 데뷔전 언론 매체 관계자들을 불러모은 쇼케이스[* MTV와 VH1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I Turn To You'''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